영상을 공부하면서 한 가지 불편한 점이라면 어떠한 영상을 보더라도 신기하게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소설 책을 나름 많이 읽어서 불편한 점이라면 어떠한 소설을 읽더라도 내용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 책을 나름 많이 읽어서 영상을 볼 때 불편한 점이라면 어떠한 영화를 봐도 내용을 미리 짐작할 수 있고 몇 분 정도에 갈등이 생기고 해결될지 예측 된다는 것이다.

영상을 공부하면서 책을 볼 때 불편한 점이라면 책을 보며 상상할 때 기술적 제약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상으로 옮기면 연출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을 관찰하다보면 인간관계의 끝은 어느 즈음에 있다는 것이 보인다. 어릴 땐 인간 행동을 관찰하는게 취미였는데 패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닿게 되고 부터는 단순 행동보다 패턴 파악을 관찰한다. 그냥 행동이 점, 선, 면으로 표현을 한다면 패턴은 일회성의 행동이 아닌 시간을 가지고 보이는 모습으로서 이야기를 가진 완결성을 지닌다. 삶은 그러한 패턴들이 집합들을 이루며 만들어진다.

집합들은 상황인식을 복잡하게 느끼게 한다. 비슷한 혹은 정말 똑같다고 느껴질만한 상황이지만 그것은 한 순간일뿐 인간으로서 살아온 시간의 발자취가 다르기에 방향이 다르다. 이 말은 주로 외국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비교할 때 내가 즐겨쓰는 말인데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 사람은 개개인의 문화적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예축가능한 범위내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을 전제하게 되는 경우둘은 꽤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언이라는 개개인이 소유한 문화적 지식을 공유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보면 만남과 이별의 프로세서 처럼 말이다. ㅡ 나는 모든 이별한 사람들에게 영화 이터널 썬샤인을 추천한다. 만남과 이별사이에 있는 시간은 개개인들의 케바케지만 그 시간의 시작의 시간과 끝의 끝은 어쩜 그리도 비슷한가!

이렇게 똑똑이 짓을 하는 듯 글을 쓰지만, 사실 내 문제는 내가 풀기 어렵다. 최대한 객관화된 자신을 바라보고자 하지만 객관화된 내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내 시체를 바라보는 내 모습같은 것이다. 태초에 죽을 것을 알고 헤어짐이 있는 유한한 존재로서 숨쉬고 있어도 언제 무슨 일로 멈추게 될지 모르면서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난 내일엔 무관심에 가깝게 대하게 된다.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종합하는게 더 쉽게 느껴진다.

아무튼 대다수의 시간은 바로 앞에 놓인 일에 묶여있다. 밥을 무엇을 먹을지, 술을 마실지, 언제 잘것인지 하는 등등 아이폰4를 가려면 약정승계남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라던지 말이다. 좀 더 앞을 보면, 취직을 해야하나, 돈은 얼마나 벌어야 하나, 결혼은 왜 자꾸 삶에 필요한 것 이라고 유부당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나 처럼 그냥 소소한 사회 인간들의 패턴에 대해 생각하고 허덕인다.

지금 난 눈에 보이는 패턴과 내가 가질 수 있는 특수성에 대해 고민한다. 선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 수 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는 그러하다. 그나마 남들이 인증해준 안전한 라인을 따라 걸을 것인지, 한번 더 기대해 볼 것인지 졸린 새벽 세시 정각이다.

아이폰으로 침대에 누워 갑자기 쓰니 뭔가 뒤숭숭.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10/07/13 03:01 2010/07/13 03:01
co2N 이 작성.

광화문에 있다가 야간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막차일까봐 헐레벌떡 뛰어가서 올라탄 차엔 그리 많은 사람이 있지 않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맨 앞자리는 비어있었다. 뛰어서 힘들기도 하고 좋은 자리도 있는 겸 그 자리에 앉았다. 지난 번에 탔을 때보다 15분여 일찍인 시간에 탔는지라 도대체 이 차의 막차시간은 언제인지 알고 싶어서 기사 아저씨께 물어보았다. 대답은 1시 50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게 막차라고 하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광화문에서 만난 40대 초반 아저씨에게도 6.10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태어나 있었음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6월 항쟁의 사진을 보고 난 뒤에 나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들을 보면 늘 여러가지를 묻게 된다. 그리하야 친절하게 이것저것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고 문득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첫번째는 역시 시위였다.

일 하는 시간에 영향을 주는 요근래의 시위는 어떻게 와닿으실까. 혹여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 대답은 쿨했다. "틀린 것은 바로 잡아야지, 짜증같은거 하나도 안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의식이 깨어있어서 옳은 일을 찾아갈 줄 안다고 믿어." 이런저런 내 의견과 아저씨의 말을 듣다보니 마음이 후련하다.

오늘 따라 사람들이 별로 안탄다며 이야기 하시길래 "그래도 주말에 술취한 사람들 버스타는건 여전하죠?" 하고 물으니 허허 웃으시며 심야버스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 심야버스를 만들게 된 취지는 평화시장이나 그런곳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막차타고 일하러 나와서 시장 둘러보고 첫차타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처음 심야버스를 운행할 때 만해도 한번 운행에 300명도 넘게 데리고 다니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버스마다 만차에 끝내는 못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시며 "요즘은 없어, 다들 택배로 시키는지 뭔..." 이제는 심야버스는 술취한 사람들을 위한 차가 되어버렸다고 하시며 약간은 씁쓸하게 웃으신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사이에 한 정거장에서 사람 몇몇이 탄다. 전부가 교통카드로 삑삑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데, 한 사람이 현금으로 냈다. 동전이 딸랑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낮설다.

"아저씨, 혹시 이런 동전 떨어지는 소리 그립지 않으세요? 왜 예전엔 사람들이 많이 타면 동전 한번에 휵! 하고 내리면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딸랑딸랑했잖아요. 요즘은 카드로 삑삑 대는데 허전하지 않으세요?"
"편하지 뭐, 예전엔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하도 들으니깐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얼마짜리가 몇개 떨어지고 얼마가 들어가는지 다 알았어."
"그럼 사기로 돈 집어 넣는 사람도 다 아셨겠네요?"
"물론이지, 예전엔 그런 사람들도 많았어. 거 50원짜리하고 토큰하고 크기가 비슷했잖아. 그래도 떨어지는 소리가 또 다르거든. 한가지 일을 주욱 하면 그게 바로 달인이 되는 것같어."
"제가 기억하는건 어려서그렇지만 10년정도 밖에 안될텐데, 세상은 많이 참 편리하게 변해가는데 뭔가 허전한거 같아요. 자꾸 뭘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어요."
" 허허 잃어버린 다라,..자꾸 잃어버려야 새것을 또 찾고 받아들이지. 그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아닐까. 젊음을 잃어버리는 대신에 노련함을 얻게 되듯이 말이야. 허허허그래도 살다보면 좋은 것은 금방 잊혀지고 나쁜 것은 더 오래토록 남더라구."
"저도 이제 그런 연습을 할 때가 온 거네요."
"그렇지,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듯하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게 끔 하는게 인생이니까."

그 리고 나서 안전운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교통사고 -길거리의 시체들도 참 많이 보았다는, 그런데도 바로 또 버스를 운행했어야 했다면서- 어느 덧 내가 내릴 광나루역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님들하고 이야기 하는 것은 자주지만, 버스기사 아저씨와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인 듯 싶었다.

요즘들어 시위에서나 여러군데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맨날 책에서 읽기만 했던 내용들을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다시 들으며, 내가 느낄 수 없는 과거의 일과 그들의 삶의 무게를 가늠해 보며 아침 해가 뜨기전에 하루를 끝마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6/04 04:16 2008/06/04 04:16
co2N 이 작성.

거창하게 제목을 적었지만
단지 나는 6. 25 를 이제 잊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그 동안의 그 수많은 정신교육과 티비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난 잊었다.

다들 토요일 있었단 경기에 대해 말은 찾아 볼 수 있었지만 6. 25 니 뭐니 하는 글은 한군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fifa는 한국아이피를 막아놓고 500만 서명이니 뭐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있어도. 그렇게 태극기를 들고 시청앞에서 어디서든 흔들고 입고 또 길거리에 버렸어도 한국전쟁에 관한 글은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에게도 6. 25은 끝났다.

아마 북한괴뢰군에 대한 포스터를 그리다가 통일기원 포스터로 바뀐 때부터.
수학여행이 통일기원수련회로 바뀐 때부터.
군대에서 400페이지짜리 한국전쟁사 책을 만들고
6. 25 정신교육PPT를 밤새도록 작업해 다 만든 때부터.

꾸준히 지워가던 6. 25는 끝났다.
외할아버지에게 듣던 Band Of Brothers보다 더 실감나던 전쟁이야기도.

지나간 전쟁은 끝났다.

조국영령과 수많은 피를 흘리신 분들께는 죄송하고 건방진 말이지만.
젊은 세대의 부적절한 안보관이라 한다쳐도.
이기적인 젊은 놈이라고 해도.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라면 나는 더이상 얽매이지 않고 잊겠다.
내 방식을 이제 찾아야 겠다.
내 앞에 놓여진 다른 전쟁을 해나가야 할테니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6/06/26 22:22 2006/06/26 22:22
co2N 이 작성.

한달이 지났다.

여느때처럼 주말아르바이트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몸이 좋지 않아서 사장님께서 일찍 들어가라고 배려를 해주신 날이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정문 입구에 다달았을때, 나는 보통때처럼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후문으로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어딘가 기인같은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동대문까지 걸어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실례가 안된다면 이시간에 동대문에 걸어가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그와 나의 만남은 시작 되었다.

-
차림새를 보니 아무리 봐도 홈리스가 분명한데 그의 눈에선 광채가 나고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무게감이였다. 길거리에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양복입은 아저씨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바로 그것이였다.
-

경찰서를 찾아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많이 상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곳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미 찾아갔었고 그들의 대접에 대해 많이 괴로웠다고 한다. 당당한 대한민국에 시민으로서의 도움의 권리에 대해 그들은 민중의 지팡이의 역활을 충실히 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저 멀리 강동부근에서 부터 우리동네까지 건너왔다고, 발에는 물집이 잡혀 많이 괴로운 듯한 어필.

돈 만원 드릴테니 동대문까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현금지급기는 닫혀 있었다. 그래서 난 현금지급기가 되는 곳까지 집을 문전에 두고 돌아가야 했다. 그는 물집으로 괴로운 발을 이끌고 걸으며 이야기를 했다.

나이는 43, 현재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imf때 직장을 잃었다. 그 후 일용직 노동자로서 현장에서 목수로서 일을 하고 지낸다. 집은 파주이며 아버지가 살아계시며 교육자로서의 생을 보내셔서 무척이나 엄격하시다. 어머니는 작년 겨울에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살아가면서 가장 큰 한으로 남을 것 같다. 오늘 이렇게 내가 된것은 야간 작업을 나갔다가 끝나고 현장리더가 술한잔 하자는 것을 뿌리치지 못해서 이다. 몇잔하고 겉옷을 벗어두었던 곳으로 갔더니 지갑이 없더라. 그곳엔 일당 8만 4천원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천호대교에서 동서울 터미날까지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다. 동서울 터미널에 이르러서 돈을 뽑는데 그가 말을 했다. 4만원 빌려주면 안되겠냐고. 내가 내일 꼭 입금해 주겠다. 아버지가 엄격하셔서 아무리 늦어도 집에 들어가야 할꺼 같다.

그래서 4만원을 뽑아주었다. 영수증까지 손에 꼭쥐어 주었다. 그는 나에게 말을 하였다.
"내가 이돈을 안값는다면 난 4만원짜리 인생일 뿐이겠지요. 하지만 난 내 삶이 그정도 가치밖에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인연도 인연인데 다음엔 한번 밥이라도 같이 먹읍시다."
그의 눈의 광채는 더욱더 심해졌고 동작엔 기품이 넘쳤다.

그가 택시를 타기전에, 나는 그에게 말을 건냈다.
"동전 있는 것 좀 빌려주세요."
그는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다 나에게 주었다.
4백원이였던가.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내일 연락하겠노라며.

---
날 아는 사람들은 그 평범한 한마디를 하기도 기가찰 일일 것이다.
애시당초 믿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족한 사람이기 전에 동정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없는 사람이니깐.

"너 바보냐, 미쳤냐"
"짠돌아, 나한테 쓰지"

4만원은 나에게 하루 바이트하는 것과 같은 돈이다. 하루 10시간 일하고 나면 나오는 돈 말이다. 그리고 그 날도 나는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였으니 그날 번돈을 그 사람에게 다 준것이다. 사실 처음 만남부터 그의 처지는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새벽 2시에 한 사람을 만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으며 걸었을 뿐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나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4만원짜리 인간으로 나란 사람에게 지워질떄까지 남을 것이다. 누구의 의심처럼 모퉁이를 돌아 택시에서 바로 내렸을 지언정, 나는 그 한 사람의 인간에게 4만원치의 무언가를 주었다. 어디가서 술을 사먹든 밥을 사먹든 그 돈을 다 쓰는 시간까지 그는 배가 부를것이고 소비자로서의 정신적인 충만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에 구세준 냄비에 단돈 1000원도 넣지 않은 자신에 대해 반성의 표시이기도 하고.

그 4만원은 부모에게 한끼의 근사한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고, 친구들과 기분좋고 유쾌한 술잔을 기울 일 수도 있으며, 2000원짜리 조조 영화를 20편을 볼 수 있다. 만원의 행복을 양쪽출연자에게 1주일이 아닌 2주일동안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도 줄 수 있다. 그가 가져간 4만원은 딱히 배추잎 4장이 아닌 많은 여러가지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그것을 주지 않았다면 내가 그것으로 할 수 있었던 일에대해 오늘도 잊고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난 밋밋해져가는 생활에 충분히 내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던 수업료로서 지불했다. 돈을 건내준 순간부터 그 돈을 받느냐 안받느냐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걸 알고 있는 것일까.




근 한달이 지나는데 연락이 없다.
-

나는 그가 간곳을 10초간 바라보고 다음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수중엔 1900원이 있었고 기본요금은 그것보다 비싸다.
"아저씨 제가 사실 돈이 이것밖에 없는데 이돈 되는데로만 가주시면 안될까요. 몸이 좀 안좋아서요. 사실 제가 아까 어느 아저씨를 만나서 4만원을...파주에...어쩌고저쩌고"
그 아저씨는 아파트 단지까지 2300원이나 나왔음에도 그냥 돈만 받고 데려다 주셨다.

"그래도 자네같은 사람이 있으니깐 따뜻한 세상아니겠어?"

과연 그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확신한걸까.
아니면 택시비를 깍아준 자신에 대한 무언가 필요한 것이였을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6/04/30 00:20 2006/04/30 00:20
co2N 이 작성.

요즘 술자리에 가면 한번씩 하는 이야기가 있다.

첫 잔을, 첫 모금을 즐겨보자.

남들보다 살아오며 많이 마신것도 아니고 일찍부터 술을 마신것은 아니다. 그냥 남들보다 고등학교때 술을 더 마시고 대학교때 덜 마셨을지언정 그 양에 의한 차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무엇무엇을 할줄 아는 나이에 대해 무수히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니 나이때는 몰라" 이 말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내가 아는 것이 진리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이란 전적으로 개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게 됨으로서, 나이가 불어나면 불어날 수 록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나이는 시간이란 세월을 말하기 쉽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한해를 365일 정도로 규정해놓고 한살 한살 세어가며 지나가는 것이다. 시간에는 내가 해왔던 모든 행동과 느낀 감정이 섞여 있다. 고교시절 물리책처럼 대충 엇비슷하다고 말하기엔 이제는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다. 중요한건 나이게 아니라 보낸 시간임을.

한때는 맥주가 술이나며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서 원샷으로 마셨던 때도 있었다.
한때는 소주 첫잔이 달달하면 "오늘 위험하겠는걸" 이라며 웃음짓던 때도 있었다.
한때는 술의 고급화를 선언하면서 "이제 소주 맥주 안먹어, 양주와 칵테일만!" 이던 때도 있었다.
소주 4병에도 정신이 말짱한 때도 있었고 맥주 반컵에도 이리저리 휘둘린 적도 있었다.
이렇게 지나고 지금에 와서야 그것들은 모두가 나의 교만이었음을 인정한다.

술은 한결같았다. 내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해도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제서야 난 그녀를 마주대할때 내 사설을 늘어놓기전에, 이야기를 듣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어떤 술이던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마시던 술이나 새로운 술이나 나의 음주는 첫잔의 대화에서 시작을 한다. 그것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에겐 실례되는 행동이지만, 난 첫잔은 조용히 술과 대화를 한다. 아니 그것은 대화(talk)가 아니라 술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say)다. 항상 나의 지금 상태에 대해 내 자신보다 더 진솔하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가 반갑다. 오늘은 이정도만 마시면 좋을꺼 같다는 유익한 정보부터 내가 그녀를 또 왜 찾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그것으로 나는 다음잔을 들이킬 수 있다.

어머니는 내게 말을 한다. "너는 체질이 아빠 체질이라서 술을 마시면 안되는거 알지?"
그럼 이렇게 대답을 한다. "속체질은 아빠 체질인데 마시는 체질은 엄마 체질인걸 어찌하리오."

첫잔을 사랑하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마셔보면 헤어날 수 없는 맛을 지닌 바로 그 와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6/04/29 12:33 2006/04/29 12:33
co2N 이 작성.
TAGS ,

4월 20일은 히틀러의 생일이다.
네오나치들과 스킨헤드들의 축제날이다.
근대에 가장 화려하고 열정적이였던 독재자는 사후에도 이렇게 축하받고 있다.

아직도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가.


수백만명의 목숨위에 서 있었으며
그의 아래 만들어진 수많은 죄악은 아직도 현재에 남아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살아남은 홀로코스터들은 팔레스타인을 향해 총을 갈겼다던지,
이리저리 남의 나라 전쟁에 쫓아다닌 미국은 빌딩에 비행기가 쳐박혔다던지,
러시아에 남아 있는 '고려인'과 그들의 등쳐먹은 '한국인'이라던지.
이 시대에 있는 모든 죄악이 그의 손에서 입에서 나왔을리는 전혀 없지만 핑계를 대자면 한없이 핑계를 댈 수도 있는 존재인 아돌프 히틀러.

그의 총칼과 독가스는 없어졌을지언정, 강력한 언론의 대중선동의 힘과 국가에 의한 국민은 어느새 돌고 돌아 우리 한국사회에도 남아있다. 난 히틀러의 생일을 계기삼아 다시 한번 그를 한없이 미화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와 레니 리펜슈탈에 대해 생각을 한다.

얼마전에 괴벨스에 대한 책이 나왔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1000p를 넘는 양에 3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여러가지로 많은 의미가 있다. 일단 괴벨스를 아는 사람은 그에게 천재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아깝지 않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는 완벽한 나쁜 천재였으며, 우리는 그의 흔적을 대중문명이 전파된 모든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획기적인 발명품중 하나인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가장 나쁘게 이용한 사람이니깐 말이다. 특히나 우리 사회를 비춰볼때 그의 흔적은 절대적인 군부독재시절을 통해 비춰 볼 수도 있다. 또한 최근의 영화인 V For Vendetta에선 미디어매체를 가장 큰 악의 영향으로 꼽기도 했으니, 실로 그가 생각해내고 사용한 대중선동의 방법은 천재라 안할 수 없다.

의지의 승리 中 괴벨스



1934년에 만들어진 Triumph des Willens(의지의 승리)는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전당대회를 기록한, 레니 리펜슈탈에 의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후대에 영화기법에서 쓰이게 되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편집 기법들이 다양하게 들어간 이 기록 다큐멘터리는 선전영화로서의 최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여러대의 카메라를 이용하여 같은 시간 다른 장면을 편집한다던지[요즘은 아주 그냥 없는 카메라 까지 만들어서 가상으로찍어대지만...다 여기서 배워간거다] 웅대하고 장엄한 행렬과 열성적인 연설. 맨 마지막으로 가면 어느 열성적인 교회에 있는 듯한착각도 느낄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군대의 교육용비디오에서도 볼수 있는 여러가지가 담겨 있다.
레니 리펜슈탈은 미디어 크리에이터로서 가져야 할 마인드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모든 예술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녀 역시 천재 소리를 들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말과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핵폭탄을 만들진 않았지만 그 토대를 제공한 아인슈타인과 비교할만도 하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만큼 선전영화 제작에 있어서 순수한 크리에이터였는지는 고인이 된 그녀만이 정말로 알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그녀는 전후에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그녀의 반평생 넘게 지고가야 했던 문제였다.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자신의 제작동기에 대해 당당하였으나, 그녀의 필름 뒤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Impressionen unter Wasser[2002] 그녀는 한세기를 살았다.

[한가지 더 덧붙이면 그녀의 다큐는 당나귀에서 중국과 이탈리아에게 인기 있는 자료다]

전쟁에서 졌기 때분에 승자의 기록 속 그는 무능력한 지도자였으며 멍청한 남자였다. 하지만 괴벨스의 눈과 그의 휘하의 수뇌부들은 그의 어떤 면을 보았을까 궁금하다. 만들어진 이미지속의 히틀러와 다른 면을 본 수뇌부는 그를 업신여기기도 하였으며 그의 말 한마디에 인생을 송두리채 가져다 주기도 하였으니 나로선 도통 알 방법이 없다.

오늘날 많은 그의 열성적이 지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은 단지 하겐크로이츠와 불확실한 세대에 대한 불안감을 향해 목적없는 찬양일 뿐인 것임을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싶다.[들리지 않겠지] 군부독재 시절과 박정희가 그리운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다.[들리지 않겠지]

어찌되었든. 지금은 고인이된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을 맞이하여.
이미 살아있지 않은 자의 생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음에.
끄적끄적......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6/04/20 03:00 2006/04/20 03:00
co2N 이 작성.

여느 때처럼 야후 뉴스를 보다가 아래 게시판 글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잘죽었다" 라고 차갑게 말하는 리플을 보고 나서 그만 흥분해 버렸다. 나도 분명 예전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왜죽었냐 냐악한 모습일바에는 죽는게 낫다고 자살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가볍게 죽음을 말하는 사람에게 화가난다기보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조금은 내가 성장했다기보다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관련뉴스보기




약간의 글을 남기려다 어느 분의 글에 흥분하며 동시에 글을 쓰다보니 무척이나 길어지고 이 기사와는 조금 동떨어진 부분까지 건드리게 되더군요.


우리나라는 고교시절 전공에 대한 이해와 수업이 부족합니다. 돈잘벌기 위한 직업, 그것이 아닐까요. 의대에 가기 위해 공부하는 애들중에 '난 꼭 아픈 누군가를 고쳐주고 싶어' 라는 생각을 가진 아이를 보면 만화같다는 생각이 드는 현실은 저뿐일까요. 내가 그 점수를 받았으니 가는 것이 현실이죠.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의욕도가 제로에 가까운 우리나라 교실입니다. 고교시절 혹은 그 이전부터 그것들을 개발하는 교육을 한다면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조금은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나는 점수보다 입시제도 또한 각각의 직업에 따른 개성있는 입시가 스스로의 하고 싶은 일, 전공을 스스로 선택하게 도와준다면 대학 또한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요.


고교생이 대학생이 되기전에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학 세달만 다녀보라는 분 말씀처럼 그 분이 깨달은 그것을 왜 알려주지 않을까요. 힘든 경쟁속에 비인간적인 대우까지 감수해야하는 현실은 오늘부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회. 우리사회가 추구해야할 방향입니다. 좀 더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런말뿐으로는 변화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을 안다면 고쳐야 할일만 남은 것이죠.


당장 내가 나갈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해도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처럼 내 자식과 그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잘죽었다, 혹은 가볍게 말씀드리는 분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왜 죽었냐는 분께 드리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왜 이런 시대가 오게 되었는지 그것이 현실이라고 인정하라는 분들.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같은 분들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전쟁.


누군가 누구의 것을 빼앗으려고 죽이려들죠. 과연 누가 누구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걸까요. 정해진 인원과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경쟁을 하는 그네들의 잘못입니까?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살아남았다. 죽은 놈이 병신이다. 전쟁후엔 그런 의식밖에 남아있지 않은 분인가요.


과연 이 시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겪었던 것을 또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건지. 한줄 글로 누군가의 죽음을 희롱하는 당신들 역시 피해자임을 압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3/11/05 23:52 2003/11/05 23:52
co2N 이 작성.
TAGS